🍏: 비 좋아하냐고 묻는다. 근데 어떤 비인지는 비밀.

EP.11 from. HYUN

2023. 7. 18.

"비가 오면 꼬옥 들어줘야하는 노래가 있지. 주섬주섬.."

안녕하세요 님, 잘 지내셨나요?

네. 제가 한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주간레터, 격주레터, 다시 주간레터가 되나 했더니만 결국 월간 레터가 되었네요. 그치만 저는 굴하지 않을 겁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니까요. 물론 이런 좋은 변명을 갖다 붙이기에는 제가 너무 뻔뻔한가요. 저의 이런 점도 귀엽게 봐주시면 좋겠네요.

지난 4주간 비가 많이 왔지요. 저는 한 달 전에 예쁜 우산을 선물 받았는데요, 그날부터 그 우산을 여러 번 뽑아 들 일이 많았어요. 우산의 프린팅이 예뻐서 비가 오는 것도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게다가 이번 7월 8월에는 단 5일을 제하고 비가 계속 올 거라는 도시괴담에 낚여 장화도 샀는데요. 덕분에 길고 긴 통근길이 두렵지가 않았답니다. 또 아주 멋진 외투가 한 벌 생겼는데, 장화에, 귀여운 우산에, 그 외투까지 입으면 거센 장대비도 견딜 수 있었어요.

제가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는 상시 노래를 틀어놓고 일을 해요. 주로 집중에 크게 방해가 안 되는 팝송이나 가요가 나오는데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직접 틀을 수가 있어요. 요즘은 비가 와서 축 처질 땐 옛날 2000년대 가요를 틀고, 아니면 아예 비와 어울리는 노래를 틀곤 했는데요. 이 두 개 주제의 노래들을 다 소개해 드리자니 아깝고 해서. 오늘은 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본격 고품격 음악방송레터 시작 !

'몰컴'이라는 단어 아시는 분.. ?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뭐 물론 요즘도 가정 내 교육 방식에 따라 컴퓨터 사용금지라는 규칙이 있을 수 있겠지만요. 아무래도 지금의 초등학생 친구들은 저마다 하나씩 스마트폰이 있어서 컴퓨터 금지라는 게 조금은 의미가 다를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초등학생 시절 엄격하게 컴퓨터를 금지당했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맞벌이셨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컴퓨터를 할 수 있었죠. 그때 제가 매일같이 접속한 사이트는 쥬니어 네이버의 동물농장과 게임랜드였는데..

당시 안녕이란 말 대신, 태양을 피하는 방법으로 최대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가수 비. (하늘에서 내리는 비 이야기가 아니었다네요 ^^) 본격적인 습-하 창법을 보여주는 It's Raining 으로 컴백합니다. 그쯔음 건전지를 넣어 작동하는 MP3 기계들이 보급화가 되기 시작헀고, 많이 넣어봐야 노래를 60곡 정도 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60곡. 많은 것 같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굉장히 적은 수 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앨범을 내면 기본적으로 7곡 정도가 수록되어 있을 텐데. 좋아하는 가수가 10그룹이면 벌써 끝나는 거예요 이런 미친! 그땐 그랬답니다. 돌아와서, 어떤 경로로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당시에 화제였던 뮤직비디오들이 포털 메인사이트에 걸렸던 것 같고, 그걸 계기로 여러 뮤직비디오들을 한 번에 보게 되었을 것 같아요. 비의 It's Raining 뮤직비디오를 시작으로.. 이때 저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너게 됩니다..

몰컴을 하느라 1분 1초가 너무 빠르게 흘러가던 저에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접한 이 4개의 뮤직비디오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어요. 특히 김윤아 언니가 양갈래를 하고 방방 뛰어대는 하하하쏭 뮤직비디오는 3분 12초가 3시간인 것처럼 느껴졌죠. 수학 문제를 풀 때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줄 알았는데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재미있고 아름다운 걸 볼 때도 시간이 흐르는 걸 아예 체감할 수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하하하쏭 뮤직비디오를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처음과 같은 충격은 느낄 수 없었지만, 처음 접한 가요는 여전히 저에게 큰 자극이었습니다. 하여 제 안엔 제가 너무도 많아, 이전의 레터에도 말했듯이 클래식을 좋아하는 나와.. 원더걸스를 좋아하는 나와.. 자우림을 좋아하는 나와.. 2000년대 가요를 좋아하는 내가 남아...

괴물이 되어버렸어..

그래서 요즘은 유튜브 뮤직에서 세븐 - 열정을 검색해서 뮤직스테이션을 시작하곤 하는데요. 덕분에 브릿지 머리가 유행하고 힙합바지가 주류였던 시절을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영턱스 클럽처럼 입고 다니는 청년들이 많아서 제가 지금 2002년을 살고 있는지 2023년을 살고 있는지 조금 헷갈리긴 해요. 초등학생 때 좋아하던 남자애가 힙합 스타일로 옷을 입어서, 엄마아빠한테 나도 힙합바지 입고 싶다고 졸라 동대문을 갔던 기억이 스쳐지나갑니다.........

정말 장마에 들으면 좋을 노래는, 다음 레터에서 소개해드릴게요. 원래는 정말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오늘 귀갓길에 베이비복스의 Killer를 무한반복하며 오느라고.. 지금 뇌에서 엠넷 케이블 채널 틀어져 있거덩요. 저는 지금 somersby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는데요. 여름엔 맥주 한 캔씩 까먹고 자는 게 또 다른 재미인 것 같아요. 겨울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야 맥주가 들어갈까 말까 하지만, 여름엔 언제 마셔도 좋은 게 맥주 아니겠어요. 그러고 보니 맥주 마시며 가볍게 보기 좋을 완벽한 코미디 영화를 하나 추천해 드립니다.

제목은 <바르게 살자>인데요. 2007년에 개봉한 배우 정재영 주연의 영화입니다. 원리원칙을 고수하며 지켜야 하는 건 꼭 지키는 경찰 정도만이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의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고, 서장이 계획한 대로 프로젝트가 흘러가게 냅두질 않는데요...